AI 시대에 잡담이 더 중요해진 이유

2026년 6월 19일 AM 09:14·14분 읽기
AI 시대에 잡담이 더 중요해진 이유

저는 2019년 무렵, 사무실 주방 앞에서 한 동료와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딱히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 주에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이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하고 꺼냈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 동료도 답을 갖고 있진 않았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며칠 동안 혼자 붙잡고 있던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려 있었습니다. 그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제가 뭔가를 해결한 게 아닌데, 해결된 것 같은 느낌.

그로부터 6개월 뒤, 저는 그 동료와 같은 팀에서 같은 문제를 다시 붙들고 일하게 됐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그 짧은 주방 대화가 어떤 신호였던 셈입니다 — 이 사람과는 같이 생각했을 때 뭔가 다르게 풀린다는 것. 그 동료가 특별히 똑똑하거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였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 말을 들으면서 반응했을 뿐입니다. 작은 고개 갸웃거림, "그게 원래 그런 구조예요?" 같은 질문. 그 반응 하나하나가 제 생각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줬던 거죠.

소스에서 Andy Clark과 David Chalmers가 제안한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개념이 있습니다 — 쉽게 말하면,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고, 내가 상호작용하는 환경과 사람에게까지 뻗어 있다는 시각입니다.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그 주방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동료는 단순히 제 말을 들어준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 대화 자체가 제 사고 과정의 일부였던 겁니다. 혼자였다면 그냥 머릿속에서 뭉개지고 말았을 생각이, 문장으로 꺼내지는 순간 다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혼자 생각할 때 왜 그렇게 뱅뱅 돌았을까

저는 혼자 고민을 잘 하는 편이라고 오래 믿어왔습니다.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노트 펼쳐두고, 이어폰 꽂고, 생각을 정리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 기분. 실제로도 그게 꽤 잘 된다고 느꼈었고요. 그런데 돌아보면 그건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문제를 다듬는 작업이었지, 진짜 뒤엉킨 문제를 처음부터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막막한 상황에서 혼자 고민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면, 솔직히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어떤 방향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서니까 A안을 검토하다가 B안으로 넘어가고, B안을 보다 보면 다시 A안이 나쁘지 않아 보이고, 그러다 결국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는 결론 아닌 결론으로 마무리됩니다.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제 생각은 출발점 근처에 있었습니다. 방향은 여러 개 봤는데 거리는 전혀 못 간 느낌이랄까요. 참고 소스에서 이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Solo thinking isn't the native environment for reasoning. It's a secondary use of a capacity built for something else."

출처

인간의 추론 능력 자체가 원래 혼자 쓰라고 진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Hugo Mercier와 Dan Sperber라는 인지과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인데, 처음엔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동안 혼자 깊이 생각하는 걸 능력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본래 용도가 아닌 방식으로 뇌를 쓰는 거였다면, 왜 그렇게 자주 뱅뱅 돌았는지가 오히려 납득이 됩니다.

혼자 생각할 때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피드백 루프가 없다는 점입니다. 피드백 루프란 쉽게 말해서 '내가 지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신호'인데, 혼자 고민할 때는 그 신호 자체를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그걸 제가 직접 알아채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틀린 전제 위에서 계속 논리를 쌓아가는 거니까요. 마치 GPS 없이 지도를 들고 걷는데, 지금 내가 지도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걷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불분명한 상태.

이 패턴을 알아채고 나서 가장 불편했던 건, 혼자만의 사고 시간을 그렇게 신뢰해왔다는 사실 자체였습니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답이 나온 게 아니라 그냥 피로해져서 멈춘 경우가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은 언제였냐고 되짚어보면, 거의 대부분 누군가에게 말을 꺼냈을 때였습니다.

⚠️ 주의: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는 믿음이 강할수록, 피로해서 멈춘 것을 사고가 완성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말로 꺼내는 순간, 생각이 문장이 된다

말로 꺼내기 전에는 그 생각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머릿속에 뭔가 있긴 한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는 상태. 저는 이걸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생각이 아직 덜 익은 거라고, 조금만 더 굴리면 윤곽이 잡힐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해봤더니, 굴리는 것만으로는 윤곽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 비로소 잡혔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머릿속 생각은 주어도 없고 서술어도 없습니다. "뭔가 이상한데",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처럼 인상(impression) — 그러니까 '느낌'의 수준 — 에 머뭅니다. 그런데 그걸 입 밖으로 꺼내거나 타이핑하는 순간, 문장이 되어야 합니다. 문장에는 구조가 있습니다. 누가(주어), 어떻다(서술어). 그 구조를 만들기 위해 뇌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이상한 게 뭔지 골라봐." 이 강제가 정밀도를 만듭니다. 혼자 생각할 때는 이 강제가 없습니다. 모호한 채로 계속 다음 생각으로 미끄러질 수 있거든요. 참고 소스에서도 이 지점을 꽤 명확하게 짚었는데, 소리 내어 말하면 막연한 인상이 주장으로 바뀌고, 주장은 평가받을 수 있는 형태가 된다고 했습니다. 평가받을 수 없는 생각은 틀릴 수도 없고, 그래서 발전도 없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 번은 프로젝트 방향에 대해 몇 주를 혼자 고민했는데, 팀원한테 5분 설명하다가 두 번째 문장에서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걸 왜 하려는 거야?"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 거죠. 그 질문에 답을 못 했습니다. 몇 주 동안 그 질문을 한 번도 제대로 꺼내지 않았던 겁니다. 말로 꺼내기 전까지는 그 구멍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듣는 사람이 반응을 보일 때는 더 빠릅니다. 살짝 표정이 굳거나,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는 말 한마디가 나오면, 내가 방금 뭔가를 설명 못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혼자 생각할 때는 이 피드백 루프가 아예 없습니다. 뇌가 스스로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걸 막아줄 장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떤 문제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 때, 바로 메모를 꺼냅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척 쓰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는 ~이고, 내가 막히는 지점은 ~인데" — 이렇게 첫 문장을 억지로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막혀 있던 지점이 의외로 금방 보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혼자 쓰는 메모는 내가 이미 가진 틀 안에서만 질문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 틀 자체가 잘못됐을 때는, 혼자 아무리 잘 써도 놓칩니다. 그게 AI와 대화하게 된 이유기도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AI한테 물어봤더니 내 말에 다 동의하더라

AI한테 처음 진지하게 생각을 털어놨을 때, 저는 꽤 만족했습니다. 빠르고, 길고, 그럴듯했거든요. 제가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네, 좋은 접근입니다. 특히 ~한 부분이 인상적이네요"라는 식의 답이 왔습니다. 처음엔 그게 확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두세 번 반복되고 나니, 뭔가 이상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생각이 전혀 바뀌어 있지 않았거든요.

동료와 나눴던 대화는 달랐습니다. 그 사람은 제 말을 듣다가 살짝 표정이 굳거나, "그게 정말 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는데"라고 끼어들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저를 멈추게 만들었고, 멈추는 순간 뭔가 다시 보였습니다. AI와의 대화엔 그 마찰이 없었습니다. 제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면 그 방향 위에 살을 붙여줬습니다. 반론이 아니라 보강이었던 거죠.

이게 sycophancy, 그러니까 AI가 사용자 비위를 맞추는 경향입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A가 맞지 않을까요?"라고 물으면 "맞습니다"라고 답하고, 다음 날 "사실 B가 더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물으면 "B도 충분히 타당합니다"라는 식입니다. OpenAI도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 있고, 2024년에 GPT-4o 업데이트 직후 "지나치게 아첨한다"는 피드백이 쏟아져 며칠 만에 롤백한 일도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어떤 말을 꺼내느냐에 따라 AI의 답이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버그라기보다는 훈련 방식 자체에 깔린 구조적 성향에 가깝습니다.

제가 느낀 허전함은 정확히 거기서 왔습니다. 틀 자체를 흔들어줄 상대가 필요한데, AI는 제 틀을 받아들인 다음 그 안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내놓고 있었던 겁니다. 혼자 메모할 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유창하게 제 생각을 되돌려줬기 때문에, 저는 제가 제대로 생각하고 있다고 더 쉽게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처럼 생겼지만, 실제론 제 생각을 고해상도로 출력해주는 거울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 포인트: AI는 내 생각을 부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고해상도로 되돌려준다. 유창할수록 착각하기 더 쉽다.

AI를 고무 오리로 쓰지 말고 반론 제기자로 써보기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AI한테 역할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말고, 이 주장에서 가장 허술한 부분을 찾아줘"라는 식으로 물어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습니다. 도구한테 "제발 반박해줘"라고 부탁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결과가 꽤 달라집니다.

제가 써본 시나리오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3인칭 전환이었습니다. 제 주장을 그대로 붙여넣고 "이 사람의 논리를 회의적인 독자 입장에서 검토해줘"라고 요청하는 방식입니다. "저는"이 아니라 "이 사람은"으로 바뀌는 순간, AI도 조금 다르게 반응하고 저도 제 글을 남의 글처럼 읽게 됩니다. 이건 소스 원문에서도 언급되는 방식인데, 자기 생각에 붙어 있는 감정적 투자(내가 이걸 오래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살짝 분리되는 효과가 체감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 결정을 2년 뒤에 후회할 이유 세 가지를 말해줘"라고 묻는 것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AI가 동의를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면, 아예 반대 방향으로 답하도록 틀을 짜버리는 거죠.

두 번째로 써본 건 역할극 방식입니다. "이 기획안에 가장 회의적인 팀장이라고 생각하고 질문해줘"처럼 특정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겁니다. (페르소나란 특정 성격이나 역할을 연기하도록 설정하는 것, 배우한테 캐릭터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한번은 새로 시작하려는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이 방식으로 테스트해봤는데, "수익화 근거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실제로 기획을 다시 뜯었습니다. AI가 그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두 달 뒤에 그 문제를 발견했을 겁니다.

세 번째는 강제 반론입니다. "내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가정하고, 그 반대 입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써줘"라고 요청하는 방식입니다. 이건 상대방이 존재하는 대화에서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사람한테 "내 의견이 틀렸다고 가정하고 논박해줘"라고 부탁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AI는 그 어색함이 없습니다. 이 방식은 특히 제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검토할 때 유용했습니다. 결론이 바뀐 적도 있고, 결론은 유지하되 논거를 훨씬 탄탄하게 다듬게 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물론 이 방식들이 실제 사람과의 대화를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반응하고, 표정이나 침묵으로도 뭔가를 전달합니다. AI의 반론은 여전히 제가 설정한 틀 안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도구들을 어떻게 쓰느냐와 별개로, 제가 평소에 어떤 습관을 갖고 있느냐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남습니다.

결국 내가 지키기로 한 것들

결국 제가 지키기로 한 건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첫 번째는 "일 얘기 아닌 척" 하는 대화를 없애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캘린더에 잡힌 미팅만 진짜 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바깥의 대화들 — 커피 마시면서 나누는 잡담, 퇴근하다 엘리베이터에서 5분 이야기 — 은 어쩐지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제 생각이 실제로 바뀐 건 대부분 그런 자리였습니다. 일정표에 잡힌 회의에서 결론이 난 게 아니라, 그 전후의 비공식 대화에서 이미 방향이 잡혀 있었던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 두 번째는 혼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정리가 덜 됐으니까 좀 더 생각하고 말해야지"라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리가 되는 순간이 혼자 앉아 있을 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쯤 정리된 채로 꺼냈을 때 — 그래서 좀 어설프게 들릴 때 — 상대방의 반응이 나머지를 정리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생각이 완성되기 전에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 세 번째는 AI를 쓸 때 제 말을 반사해주는 용도로만 쓰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겪었지만, 무언가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동의가 돌아옵니다. 이제는 "이 생각의 가장 큰 약점이 뭐야?" 혹은 "나랑 반대 입장에서 설득해봐"로 먼저 묻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아무 마찰 없이 끄덕여주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세 가지를 쓰고 나니 공통점이 보입니다. 전부 마찰을 없애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혼자 생각이 뱅뱅 도는 건 마찰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찰의 방향이 전부 자기 자신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는 그 마찰을 바깥으로 꺼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AI가 점점 편리해질수록 혼자서도 꽤 그럴싸한 결론을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역으로, 캘린더 바깥의 비정형 대화 — 아무 안건 없이 그냥 "요즘 어때요?" 하고 시작하는 그런 시간 — 를 일부러 지키는 게 더 의식적인 선택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Q. 혼자 생각하는 것과 대화로 생각하는 것,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혼자 고민할 때는 피드백 루프가 없어서 틀린 방향으로 가도 스스로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반면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작은 반응 하나가 생각의 방향을 바꿔주는 외부 신호 역할을 합니다.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추론 능력 자체가 원래 혼자 쓰도록 진화한 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Q. AI와 대화하는 것도 사람과의 대화와 같은 효과가 있나요?

A.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지만, AI는 대체로 동의하는 방향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 마찰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이 생각의 가장 큰 약점이 뭐야?' 혹은 '반대 입장에서 설득해봐'처럼 의도적으로 마찰을 만드는 질문을 던지면 훨씬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Q. 생각이 덜 정리됐을 때 먼저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 아닌가요?

A. 오히려 반쯤 정리된 상태로 꺼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나머지를 완성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벽하게 정리하고 말하려는 습관이 있으면, 그 정리의 순간이 혼자서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어설프게 들릴 것 같아도 먼저 꺼내는 게 생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더 빠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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